해외연수기 : 올랜도 연수기

 

김미경(계명의대 동산의료원 내분비내과)

 

날씨가 추워지고, 송년회 등이 시작되는 12월이 되면 많은 분들이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며, 즐거웠던 일들을 기억하며 행복해 하기도 하고, 아쉬웠던 점들을 생각하며 후회하기도 한다. 또,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다짐을 하게 된다. 연수기를 의뢰 받고 다시 지난 1년을 생각해보니, 그 어느 해 보다 즐거웠던 일, 후회되는 일, 새로움과 익숙함으로 가득한 한 해였던 것 같다.

디즈니월드로 익숙한 올랜도는 미국 내분비학회, 당뇨병학회 등이 개최되는 곳이기도 해서 낯설지는 않지만, 연수지로서는 낯설게 다가올 것 같다. 미국의 다른 곳을 여행할 때에도 올랜도에서 왔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디즈니에서 일해요? “ 라고 물어보곤 했다. 이와 같이 올랜도에서의 연수생활은 디즈니로 가득한 생활이었다.

Sanford Burnham Prebys(SBP) Medical Discovery Institute 와 Translational research institute (TRI)

연구실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SBP Medical Discovery Institute는 공항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Lake nona 의 Medical City 에 위치해 있다. 대구의 첨복 단지처럼, 병원과 연구소가 모여 있는 곳이다. 아직까지도 계속해서 개발 중이어서 넓은 땅에 소들이 방목되어 있고, 많은 야생 동물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어서, 처음엔 “올랜도가 시골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SBP연구소는 캘리포니아의 San Diego(La Jolla)와 플로리다의 올랜도(Lake Nona)에 위치한 non-profit public benefit corporation 으로 Diabetes, cancer, infection, inflammation, children에 대해 주로 연구하는 곳이다. 각각의 센터에서는 기초에서부터 중개연구까지 여러 협업을 통해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 중에서 Center for Metabolic Origins of Disease 에 속해있으며, 비만과 당뇨병에 대해 주로 연구하는 Integrative metabolism program 에 지원을 했다. Program director는 Tim Osborne 교수님으로 ICDM 학회에도 오셔서 강의를 하신 적이 있다. 플로리다 병원과 TRI와 연결이 되어 있어 임상시험과 기초연구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질환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Tim Osborne 교수님과 TRI 의 Director인 Steven Smith 교수님이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공동 프로젝트는 비만 형태에 따라 피하지방세포에서 epigenetics의 변화를 연구하는 프로젝트이다. TRI 에서 대상자에게 조직을 얻고 채혈 등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새로운 방법이었고, 주로 박사 후 연구원인 Kate와 실험을 함께 하였다. 실험적인 면은 Kate가 자세히 설명을 해줘서 큰 도움이 되었고, 임상적인 것에 대해서는 내가 설명해 주기도 하고 자료를 찾아주기도 하였다. 아마 지금도 bioinformatics 박사님과 열심히 분석 중에 있을 것이다. 많은 미국의 연구소가 비슷하겠지만, SBP 연구소는 어느 장소나 오픈 되어 있어 쉽게 토론하며 지낼 수 있는 분위기여서 곳곳에서 실험 방법 등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안전을 가장 중요시 하였고, 여러 실험 분야들이 공동의 네트워크를 통해 효율적으로 일들이 진행되었으며, 대부분이 그 건물 안에서 다 가능하였다. SBP 가 기초실험을 위한 곳이라면 TRI 는 임상시험을 위한 곳이다. Steven Smith 교수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초와 임상을 연결하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두 간격을 좁히는 기능을 하는 곳이다. 임상대상자의 모든 연구, 병력청취부터 간단한 채혈, 영상, 시술 등 모든 곳이 한 곳에서 이루어지며, 훈련된 간호사나 기사, 의사들이 한 곳에 있으면서 모든 것이 진행되는 곳이다. 프로젝트 때문에라도 TRI 를 방문하였지만, 그 외에도 Steven Smith교수님이 주관하시는 TRI 의 미팅에 참가하면서 SBP 와는 다른 그곳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도 있었고, 플로리다 병원의 당뇨병 센터, 비만수술센터를 방문하고 참관할 수 있었다. 모든 분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연구실 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었다. 특히나 함께 프로젝트를 한 Kate와 Lab manager 인 Peter 가 많은 것을 도와 주웠다. 각각의 실험실마다 분위기는 다르겠지만, 경험해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우선 상의해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내 실험 프로젝트에 없는 거라도 같이 해보거나 참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빨리 깨닫고 더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든다. 덕분에 돌아오기 전 너무나 바쁜 일정을 보내고 왔다.

뜨거운 태양과 오렌지가 떠오르는 Sunshine state, 플로리다에 위치한 올랜도.

물가도 많이 비싸지 않고, 쇼핑센터도 많아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다. 특히나 추운 한국의 겨울과 달리 올랜도의 겨울은 너무나 지내기 좋은 계절이다. 여전히 뜨거운 태양 때문에 자동차 안에서 에어컨을 켜야 되는 날이 많고, 반팔로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여름이면 덥고, 매일 소나기가 오며, 허리케인이 올 수 있어 날씨를 꼭 확인 해야 한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어마어마한 Irma 가 지나가서 많은 피해가 있었지만, 작년 연수 중에도 Matthew라는 아주 큰 허리케인이 몇 년 만에 와서 휴교령, 대피령이 내려 집에서 꼼짝도 못하고 며칠을 지냈던 기억이 있다. 무섭기도 했지만, 며칠 전부터 뉴스, 아파트 관리소, 연구소 곳곳에서 허리케인 상태가 어떤지, 지금부터는 무엇을 준비 해야 되는 지 등등에 대해 계속 안내하고 대처하는 모습들이 너무 인상적이었고, 이때까지 자연재해에 너무 무방비로 지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더운 대구에서 지내는 것이 익숙해서인지, 아니면 에어컨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인지, 더위는 견딜 만 했다. 혹시 여름에 플로리다를 여행하게 된다면 매일 있는 비소식에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허리케인이 아니라면, 하루 종일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오후 3-4시쯤 소나기가 왔다가 1-2시간이면 대지는 식혀져 더위는 사라지고 비는 멈출 것이기 떄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 처럼, 올랜도에서 디즈니를 빼고 얘기하기는 힘들다. 매일 끊임없이 디즈니월드를 방문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올랜도를 방문한다. 어릴 적 좋아했던 미키, 미니, 푸우를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각각의 특색 있는 다른 4개의 파크와 주기적으로 바뀌는 쇼, 매일 밤 있는 멋진 불꽃놀이는 왜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지 금방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시설과 시스템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가 있는 것, 걷기가 힘든 것은 디즈니월드를 갈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어디든지 장애자 우선이었고, 휠체어가 마련되어 있으며, 휠체어를 타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 처음에는 몸이 너무 무거워 전동차 없이는 걷기 힘든 사람들과 몸이 불편한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서 힘든데 오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사람들이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부러웠다. 어린 애들이 캐릭터와 사진을 찍으며 사인을 받고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 디즈니월드 곳곳을 즐기고 있는 가족들을 보고 있으면 디즈니월드를 들어가는 순간 가장 먼저 보는 문구인 “ Dreams Come True” 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꿈을 이루게 해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올랜도에서 1-2시간 차로 이동하면, 한국과는 다른 밀가루같이 고운 모래의 해변과 푸르름으로 가득한 springs 가 있고, 플로리다에서만 볼 수 있는 Manatee 들을 만날 수 있어 한국과는 다른 자연을 경험할 수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시끌시끌한 도시 생활에 익숙해서 전원생활은 1주일이 지나면 심심해서 못 살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한번도 도시를 떠나 생활해 보지 않은 나에게는 전원적인 곳에서의 1년의 생활 자체가 도전이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여유를 가지고 생활하고 그러한 생활을 즐기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다시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은 지난 1년의 시간들을 더욱 꿈처럼 느끼게 하는 것 같다. 1년 동안 지내면서 좋은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임은 틀림없다. 누구나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해보지 않고서는 그 일이 쉬운지 어려운지는 알 수 없다. 넓은 자연과 함께 하고,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꿈은 실현된다”는 긍정의 힘을 보여주는 올랜도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Brave New World” – My trip to the Wonderland

 

 

전성완(순천향의대 천안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지난 1년의 기억을 돌아보니 해외연수가 어마어마한 배움의 기회였음을 새삼 실감했다. 체득의 경험 하나하나에 나름의 감상을 얹을까도 했건만, 최신 연수기 10편 중 3편이 보스턴 소개인데다 같은 연구실 선배인 김상수 교수도 곧 연수기를 작성한다고 하니본고는 비슷한 하버드 이야기보다는 온 가족이 체험한 보스턴-브룩라인 생활을 다뤘다.

연수를 통해 가장 달라진 관점은 한민족 세계관에서 조롱의 대상이던 ‘천박한 미제국’의 장엄한 면모였다. 익숙했던 중화제국과의 대비는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미국을 한줌의 글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미국의 장점이 부각된 보스턴으로 국한하면 대강의 묘사가 가능하겠다. 미국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이곳 사람들도 그런 차별화를 싫어하지 않는 듯 했다.

보스턴에 오래 살았던 지인은 “First in Boston, Best in New York” 구호를 알려줬다. 백인 정착촌, 도서관, 미술관, 식당, 공원, 지하철 등 최초가 수도 없이 많다. 도저히 최초를 알 수 없는 역사 깊은 한반도 출신으론 귀찮을 수준이다. 그렇지만 교과서로 외우기만 했던 근현대 과학기술 문명의 발전 기록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어 부러운 마음도 컸다. 미래 문명의 발전도 보스턴에서 주도하겠다는 자부심을 여러 회의에서 느낄 수 있었다. 세미나 말미에 원로와 중견이 “There still be something unknown, WE must prepare for it.” 뉘앙스의 발언으로 팀을 독려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는데 의례적인 멘트로 치부할 수 없었다. 촘스키가 동네 서점에서 사인회를 열고 노벨 학술상 수상자들이 강연하러 몰려오는 학술도시 보스턴에선 같은 말이라도 무게가 달랐다. 정착민의 안주를 경계하며 개척민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일관된 진지함이 내비쳤다.

내분비학도의 관점에선 내분비계를 뛰어넘어 신경계, 면역계, 진화계통간 토론이 이미 활발했고, system biology 구축에 AI 접목을 시도하는 현장을 엿볼 수 있어 압도되었다. 대가의 발표를 듣다보면 마치 외계인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엄두도 못 낼 복잡한 주제를 조망하며 가시적 성과를 내는 수준(허풍도 흔하다는 지적이 있었음)으로 발표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부럽기 짝이 없었다. 과학문명의 발전에 참여하고 싶은 한편, 도약 발판을 마련하는데 아직 과제가 산적함을 절감했다.

쇼핑과 여가 등의 일상생활도 예측, 대비하며 살아가는 것이 정립되어 사후반응 보다는 사전대비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체감하게 해주었다. 백년대계와도 같은 장대한 흐름을 타니 업무 집중도가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을 경험했는데, 마치 꿈결 같았다. 다이나믹 코리아를 전투기에 비유하면 근대문명 300년의 미국은 항공모함 같은 안정감을 보여 주었다. 각자 여건이 다를 뿐 어느 한 쪽이 틀린 거라 할 수는 없겠으나 개성을 살리기에 적합한 환경이라고 생각되었다. 함께 근무했던 많은 nerd들이 행복한 개인으로 살아가며 일에 집중하는 것을 보고 부러웠다. 스포츠, 음악, 예술, 향락 문화는 놀랍도록 다채로워 여건따라 취향따라 일년 내내 즐길 수 있었다.

연수기간을 의과대학 학사일정에 맞추다보니 초등6년이던 아들의 학교는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 작년 7월 출국, 올해 6월 귀국하니 미국 서머스쿨도 한국 중학교 입학도 아쉬움이 남았다. 미국은 학사 규칙이 지역별로 편차가 커서 한국에서 준비한 구상을 많이 조정해야 했다. 보스턴은 전세계 孟母들이 모이는 곳으로, 좋은 서머프로그램은 조건이 까다롭거나 너무 비싸서 남는 자리를 찾느라 고생했다. 대신, 동네 아이들과 만나보고 9월 신학기 시작 전에 미국식 교육과정을 선험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귀국 후 중학교 편입은 학교에 재량권이 많아 협조적인 중학교에선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학교가 편입을 싫어하면 제한장치를 많이 둘 수 있어 이른바 명문학교를 보내려면 확실히 불리하겠다.

미국의 유치원, 초등학교에 대한 찬사를 많이 듣고 갔는데 중학교 프로그램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미국 초등학교는 아이의 실수를 폭넓게 수용하지만 중학교는 사회 에티켓을 엄하게 훈련시켰다. 의외로 discipline 수위가 높았지만 대신 학생 보호에 철두철미하고 공정하게 운영해서 크게 만족했다. 브룩라인 교육청에서도 bullying에 대한 비밀조사를 쿼터마다 시행하면서 학생 보호를 위해 노력했다(학군 내 다른 학교에서 사건이 터졌다는 소문이 있었음).

케네디의 모교인 Devotion school은 백인과 유대인 비율이 높았고 선생님은 물론이고 학부모 그룹도 매우 성숙해서 부모로서, 세계인으로서, 교육자로서 배우고 느낀 점이 많았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검소하게 갖추고 전통과 상대를 존중하며 마지막까지 현역으로 열심히 자아 실현하는 모범적인 가정을 온 동네에서 볼 수 있었다(과시자 및 실패자는 동네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함). 절제로 생긴 여유를 사회 환원, 약자 보호, 인재 후원에 활용하는 것도 목격했다. 멋진 공교육과 성숙한 지역사회 체험은 기대 이상의 선물이었다.

메이플라우어를 미국의 시작으로 여기는 백인 관점의 개척기도 도시 곳곳에 각인되어 있었다. 개별 일정으로 다녀온 케이프코드, 플리머스, 세일럼, 퀘백시티 여행은 개척의 흔적을 조각퍼즐처럼 맞출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 외에 아카디아 국립공원의 단풍, 찰스강의 카약, 와추셋의 스키, 화이트 마운틴의 코그레일, 탱글우드의 음악, 메인 주의 랍스터와 캠핑, 나이아가라의 버팔로윙, 천섬-오타와-몬트리올-퀘백시티 일주, 뉴욕-볼티모어-워싱턴 일주는 연구실 선배인 김상수 교수 덕분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길 수 있었다.

앞서 밝은 면을 부각했지만 어두운 면도 많았다. 수십년에 걸쳐 익숙해진 삶의 방식을 다른 규범에 맞추어 조정하는 과정은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치안이 확실한 중산층 거주지역을 벗어나면 가족 안전부터 챙겨야 했다. 보행자 대 자동차처럼 뚜렷한 강자에 부여되는 엄격한 제한이나, 지위-인종-문명의 격차를 하대하지 않고 추켜세우는 화법이 처음엔 많이 어색했다. 첫 대면에 미소가 없으면 은근히 괴롭히는 하층민 문화도 알아채는데 오래 걸렸다. 향락 문화는 외지인 노출을 극히 꺼렸다. 그들의 “WE”는 작게 하버드 출신, 보스턴 출신, 동부출신, 미국주류(Anglo-Saxon, German, Jewish)였고 크게 봐도 미국출신, 백인계 정도로 국한하는 차별의 의미를 내포한다고 느꼈다. 필연적으로 고통과 희생을 수반하는 ‘개척’은 최소화하고 심지어 도용을 정당화하며 주로 ‘숙련’만 높이는 동아시아의 스테레오타입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개심을 드러내곤 했다. 이런 yellow monkey의 악명은 이제 인도 사람들이 상당히 가져간 상황이지만, 백인의 혈통이 섞인 인도인에 대한 포용을 보고 있자면 동아시아인 견제와는 성격이 사뭇 달랐다.

명이든 암이든 진실되고 귀한 배움의 길을 열어준 병원과 대학, 대신 고생하신 김상진, 김여주 교수님과 짧은 일년이라는 기간을 알차게 채워준 김상수 교수께 지면을 빌어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동경-보스턴 이야기

 

 

이시훈(가천의대 길병원 내분비내과)

  펠로우 시절 동경대와 NIH에서 공부하던 동안 의협신문과 워싱턴 중앙일보에 격주로 연재하던 유학기를 모아 귀국 후 ‘동경, 워싱턴 이야기’란 제목으로 단행본을 출간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 기회가 닿아 다시 동경대와 하버드의대/MGH에서 일년 여 동안 연수할 수 있게 되어 내심 ‘동경, 보스턴 이야기’를 다시 쓸 계획을 세웠는데, 10년 전의 부지런함과 삶의 치열함을 다시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것은 게으름을 탓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짧게나마 같은 제목으로 지난 시간들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다행이다. 보스턴 연수기는 이미 꽤 많이 있어 주로 동경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8년 간의 길병원 생활 중에 애당초 ‘의사-과학자’로서 새로운 역할 모델 제시에 대한 진지한 고민 끝에 전술한 책자의 부제도 ‘의사-과학자 되기’로 정하고 고군분투 중이지만 언제나 아쉬움과 녹록치 않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좌절감이 들곤 했는데, 빠듯한 임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에게 주어진 시공간적 여유에 대해 적잖은 기대감이 있었다. 더불어 실행 가능한 목표 설정에 대한 고민이 동시에 깊어졌는데, 우선 진행 중인 더딘 연구의 속도를 가속화하기, 前지도교수인 정웅일 교수님이 야심 차게 진행 중인 동경대의 “스스로 지키는 건강사회” 프로젝트와 의.약.이.공 (醫.藥.理.工) 인재양성 프로그램인 GPLLI (Graduate Program for Leaders in Life Innovation)에 대한 운영의 실제 모습을 보고 싶었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세계 최고의 장수국가이면서 저출산국으로 인구의 초고령화 및 인구절벽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고, 이러한 사실은 더욱 빠른 속도로 이를 따라가는 우리 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고령화 사회를 해악으로 보지 않는 역발상으로 이를 새로운 기회로 삼아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노력을 경주하면서 이를 현실화한 가장 구체적인 대책이 “스스로 지키는 건강사회” 프로젝트이고, 이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우리에게 적용 가능한 부분을 보고 배우고자 했다. 고령인구의 증가로 인한 의료비 지출의 억제와 은퇴 없는 지속적인 생산성의 유지를 위해서 “건강한 장수”가 필수 선결 요건인데, ‘입원 진료는 외래에서, 외래 진료는 자택에서 스스로 지키는 건강 사회’를 그 모토로 하고 있다. 인류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고령화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가치 창출을 통한 신모델의 제시 그리고 이를 새로운 표준화의 기회로 설정하고 세계를 선도하는 일본의 새로운 역할과 그 가치를 재형성해가는 야심찬 미래 지향 프로젝트이다. 이미 21세기를 넘어 “22세기 첨단의료연구센터”라는 이름에서 더 멀리 바라보는 일본의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 의과대학과 병원, 연구소, 기업, 정부의 유기적인 조화 속에 전공과 학문의 영역을 뛰어 넘는 신개념 융합의 가시적 성과물들을 보면서 신선한 자극을 넘어 우리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비교우위의 현실적 우려와 함께 뜻밖에 발견된 허점이 우리가 반면교사 삼고, 때로는 협력을 통해 함께 나아가는 미래의 동반자적 협동의 길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10여 년 전부터 주도면밀하게 진행되어온 의학계 인재와 공학계 인재의 치밀하고 유기적인 물리적 협동을 넘어 의학계 전공자의 공학계 대학원 진학, 공학계 전공자의 의학계 대학원 진학을 통한 화학적 융합 인재의 양성 과정이 더욱 외연을 확대하여 의.약.이.공 연합 인재 양성 프로그램인 GPLLI가 국가 기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동경대학 내에 설치되고, 이 과정을 통해 육성된 인재들이 생명과학을 이끌어 가는 진정한 리더로 성장하고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게 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경험이었다. 특히 이 프로그램에 초빙교원으로 위촉되어 학생 선발, 평가 및 프로그램의 운영에 직접 관여할 수 있었던 점은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는데, 소통과 글로벌화, 다각화, 융합화의 진행에 있어 동아시아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민을 생생하게 접하면서 우리들의 고민과 유사함에 많은 공감을 하였고,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더욱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이를 극복하면서 더욱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상호 이해를 통한 양국간 협력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관련 인접 학문에 대한 실용적 이해 및 접근, 그리고 문제 해결 능력과 리더쉽, 글로벌 언어로서의 영어 구사 능력을 비롯한 소통의 기술 등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 가치인데,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과 이들을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인재로 바라보고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국가 시스템, 인적, 물적 지원과 효율적인 사용 등이 매우 인상적이면서 부러웠다. 때마침 개최된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바둑 대국이 한 동안 화두였는데, 인공 지 능을 위시한 4차 산업혁명의 기치를 내건 미래 의학의 이정표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의 계기가 되었다. 만능유도 줄기세포를 처음 개발한 것이 일본의 연구자인만큼 이를 의료에 이용하고자 하는 재생의료의 구현과 유전체 정보를 이용한 맞춤형 정밀 의료에 대해서 일본의 경쟁력을 공고히 하는데 국가의 사활을 걸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원천 기술을 훨씬 많이 소유하고 있음에도 각종 규제에 묶여 IT를 이용한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분야의 주도권을 우리 나라에 빼앗긴 최근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일본의 굴기는 무서운 기세였다.

7~80년대의 고도 성장기를 거쳐 90년 대 이후 20년 이상 지속된 장기 경기 침체를 거치는 동안 이제 일본의 국운이 다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피부에 느낄 정도로 거리의 사람들, 특히 젊은 층의 활기 없던 모습들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워진 점도 달라진 풍경이었다. 실제로 90%가 넘는 청년 취업률과 시부야 거리의 활기찬 사람들의 모습이 2020년 동경 올림픽 전의 반짝 반등일 것이라는 전망도 일부 있지만, 확실히 기본에 충실하고 원칙을 중요시하는 일본의 저력이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는 것은 눈 앞에 펼쳐진 사실이었다.

한국의 젊은 고급 인력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일본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도 많이 접할 수 있었는데, IT업계뿐만 아니라 의료 및 법률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내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일본 의사국시를 통해 의사면허를 취득한 후 동경대학 부속병원에서 수련중인 전공의를 가끔 만나 일본에서의 수련 생활을 엿볼 기회가 있었는데, 체계적인 교육 및 수련, 합리적인 의료 수가, 무엇보다도 환자들의 기본적인 높은 양식 수준을 국내 수련보다 유리한 면으로 꼽았으며, 수련을 위해 일본으로 향하는 한국의 의대 졸업생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해 주었다. 일본에서 근무하는 젊은 한인 변호사들과도 이따금 어울릴 기회가 있었는데, 폐쇄적인 일본 법조계의 어려움도 있지만, 국내 법률 시장이 글로벌화되고 확대될수록 일본 내 한국인 법조인으로서의 역할과 밝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증대될 기대감을 피력하곤 했다.

12년 전에는 동경대 메인캠퍼스인 홍고 캠퍼스 안의 숙소를 이용했지만, 이번엔 시부야에서 가까운 고마바 캠퍼스의 국제 숙소에 기거했다. 고마바 캠퍼스는 동경대 신입생들이 2년간 교양 및 기초 과정을 거치는 1캠퍼스와 거대한 공장 같은 분위기의 산업기술연구원인 2캠퍼스가 있는데, 젊은 학생들의 활기찬 분위기가 신선했고, 국제 숙소에서는 유럽, 미국, 중국, 대만, 남미 등 세계 여러 곳에서 온 다양한 전공의 유학생 및 방문 교수들과 교류할 수 있는 신나고 재미있는 날들이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국 유학생들은 신입생이 급감해서 동경대 전체에서 한국 유학생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 같다.

한편, 보스턴에서는 부갑상선호르몬 및 골대사학 연구의 메카와도 같은 MGH Endocrine Unit에서 지냈는데, 현대 내분비학의 토대를 세운 Fuller Albright의 지난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시간 여행이 흥미로웠고, 이 곳의 디렉터가 Mannstadt 교수로 교체되는 새로운 전기의 현장에 있었다는 의미가 있었다. Williams 내분비학 교과서의 4분의 대표 저자 중 Kronenberg 교수님, Larsen 교수님과 가까이 지내면서 여러 가지 지도를 받을 수 있었던 점이 기억에 남고, 같은 기간 보스턴에 연수 중인 내분비학 교수님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가졌던 내분비 집담회가 좋았던 것 같다.

짧은 일년 여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아쉬운 마음만 가득하지만 그 동안의 많은 만남과 인연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면서 미래의 풍요로운 결실로 다가오길 빈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허락해 주신 병원과 대학, 대신 고생하신 과장님과 과내 다른 교수님들, 그리고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신 다케다과학진흥재단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Stanford 연수기

 

 

정찬희(순천향의대 부천병원 내분비내과)

어느덧 원고 마감일이 다가와 서둘러 연수기를 쓰기 위해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다른 선생님들의 연수기를 찾아 읽어 보았습니다. 다들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보람차게, 훌륭한 연수 생활을 하셨구나 하는 것을 글 속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좋은 곳에 가서 어떻게 지내다가 왔는가를 생각하니 새삼스레 다시 마음이 무거워져, 시간을 몇 달만이라도 되돌릴 수 있다면 하는 헛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연수기에 무슨 이야기를 쓸까 고민하면서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불안하기만 했던 연수 준비기간과 연수기간 동안, 도와주시고 용기 주셨던 고마우신 많은 교수님들이 떠오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연수를 처음 계획했었던 시기에 이원영 교수님께서 UCSD에 추천서를 써주셨고, 김철식 교수님께서 UCSD 연수 준비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알려주셔서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준비 막바지에 UCSD 연수가 좌절되면서 절망에 빠져있을 때, Stanford로 연수의 길을 열어주신 강북삼성병원 Cardiology의 성기철 교수님은 정말로 큰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저는 언니와 함께 연수를 계획하고 있었던 관계로 둘을 함께 받아주라는 무리한 부탁까지 드렸었고, 그것마저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신경 써주셔서 드디어 2016년 3월 연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연수 준비하는 동안 예기치 못하게 연수 기관이 바뀌게 되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한 교수님이 계시다면 더 나은 길이 열릴 수 있는 기회라고 용기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스탠포드 대학 내분비내과에서 clinician으로 근무하고 있는 Sun H. Kim 교수님께 연수를 다녀왔고, Sun Kim 교수님은 Gerald M. Reaven 박사님과 함께 인슐린 저항성과 인슐린 분비능을 주제로 하는 많은 임상 연구를 해오고 계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인에 가깝지만 한국인의 여린 마음과 정서를 간직하고 있는 분이셨습니다. 연수 전 성기철 교수님께서 Reaven 박사님께 편지로 저희를 소개해주셔서 처음 스탠포드에 인사를 하러 간 날 Reaven 박사님과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Reaven 박사님은 제가 아주 오래 전 대사증후군에 대한 비만학회 발표 슬라이드를 만들 때 가장 첫 장의 대사증후군의 history에 관한 첫 페이지를 장식했던 분으로 인슐린저항성 증후군을 ‘Syndrome X’로 정의하였고, 1988년 Banting lecture를 하셨던 분이십니다. 연세가 90세신데도 여전히 열정적으로 연구하시는 모습, 정말 정말 한참 후배인 Sun Kim 교수님과도 허물없이 의견 주고 받는 모습, 컨퍼런스 때 여전히 직접 본인 슬라이드로 발표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절로 존경의 맘이 우러나왔습니다. 그 날 식사하면서 Reaven 박사님께서 인슐린 저항성, 혈당, 중성지방, 혈압의 상호 relationship에 관하여 관심을 갖고 대화를 이끄셨고, 사실 지도교수와 생각했었던 주제는 이것이 아니였지만, 연구 주제도 인슐린저항성과 혈압, 나이의 관계에 대한 내용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Sun Kim 교수님이 더듬더듬 잘 못하는 한국말이지만 그래도 저희가 영어하는 것보다는 나아서, 저희와 Reaven 박사님과의 의사소통을 중간에서 잘 도와주셔서 만남 때마다 부담은 없었습니다). 이곳은 모든 연구 대상자들에게 insulin suppression test 및 graded glucose infusion test를 시행하여 인슐린저항성 및 인슐린 분비능을 측정하고 있었고, 이러한 정밀 검사의 장점을 내세워 논문들을 발표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또 하나의 연구 주제는 비만한 사람에서 인슐린 clearance와 인슐린 분비능, 인슐린 저항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저희 언니는 내분비내과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주제가 무척이나 생소하고 어려웠을텐데도 혼자서 공부하고, 결국 논문을 스스로 완성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히 놀랐었고, 제 자신이 전공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다는 다짐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연구 주제에 대하여 임상 데이터 통계 분석을 하고, 산출된 결과에 대해서 또 다시 의견을 주고 받고, 의문점이 생기면 다시 통계를 돌리고, 또 의논하고….간단한 것 같지만 간단하지 않게 접근하고, 당연하다고 생각 들지만 당연하지 않게 고민하는 모습에서 덧없이 수개월이 흘러간다 생각이 들어 답답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껏 조바심치며 급하게 진행하고, 복잡해지지 않으려 애써 왔던 저를 자연스럽게 뒤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한 개의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와 시각으로 고민하는 모습, 써서 보낸 논문이 많이 부족하여 많은 빨간 줄 긋기를 양산하였지만 주눅들지 않게 한없이 배려해주시는 모습, 윗 분의 의견을 ‘아니오’하고 바로 정정하고 수정하는 쿨한 아메리칸 스타일..등등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웠습니다.

글로 쓰다 보니 상당히 후회없이 지내고 온 것 같이 포장이 된 것 같습니다. 되돌아보면 아쉬운 점이 너무도 많습니다. 참 즐거웠었던 것은, 수요일 오전 8시마다 열리는 내과 전체 컨퍼런스에 참석한 일입니다. 미국 전역 및 외국에서 저명한 교수들이 와서 다양한 주제로 발표하는데 영어 듣기 능력 함양을 위해 들어보자 시작했었고, 결과적으로 실력은 전혀 향상되지 않았지만, 이 시간을 즐길 수 있었던 것 자체만으로도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쉬웠던 것은 수요일 저녁에 열리는 내분비내과 과 컨퍼런스에 마지막 몇 개월 남았을 때에서야 들어가게 되어 좋은 강의를 많이 놓쳤던 것입니다. 참석치 않아도 된다는 지도교수의 말과 쑥스런 맘에 머뭇거리다가 나중에 듣고 싶은 주제를 하길래 용기내서 들어가게 되었는데 진작 들어갈걸 많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Insulin suppression test하는 것을 보고 적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여의치 않았다는 점, Menlo Park 라는 정말 살기 좋은 동네에 살면서도 미국의 여유로운 생활을 행복한 마음으로 즐기지 못하고 수개월을 향수병에 우울하게 보낸 점 등 아쉬운 일이 많습니다. 걱정이 많았던 저에게 Stanford 연수 결정 때부터 가는 순간, 가서 까지 일부터 백까지 조언해준 가톨릭의대 김미경 교수님과 국립암센터 이유진 교수님의 조언이 없었더라면 더 많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애 데리고 여자들끼리만 가는 미국 연수길에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하셔서 연수 기간 내내 잘 지내는지 친딸처럼 물심양면 챙겨주신 강성구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박성우 교수님과 김성래 교수님께도 진심으로 감사 말씀 드립니다. 또한 한 해 동안 연수를 허락해주시고 저를 위해 기꺼이 고생해주신 저희 내분비내과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저희 가족 모두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된 한 해였습니다. 더불어 각자가 한층 더 성숙해지고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과 계기가 되는 한 해가 되었기를 바라며 연수기를 마칩니다.

UCSD 내분비내과 연수기

 

이미영(연세대학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내분비대사내과 )

  제가 연수를 다녀온 곳은 University California San Diego 내분비내과 Dillmann 교수님 랩실이었습니다. 한국에 계시는 교수님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 샌디에고는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에서도 좋은 날씨 때문에 연수를 생각한다면 한 번쯤 고려해보는 도시인 것 같습니다. 저도 여러 도시에서 개최된 ADA에 참가하면서 춥기 만한 했던 다른 도시들에 비해 따뜻하고 깨끗한 샌디에고로 연수를 가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천안 단국대학교 병원 정현경 교수님과 연락이 닿아 Dillmann 교수님 소개를 받고 UCSD에 연수를 갈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펠로우 때 쥐 실험 하면서 랩을 조금 배운 정도라 랩실에서 하는 연구를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는데 막상 가보니 PI 교수님 이하 독일, 멕시코, 중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post doc 연구원 선생님들이 하나하나 학생 가르치듯 도와주니 생각보다는 적응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다만 언어 영역에 발달장애가 있는 저로서는 영어가 늘지 않아 고생을 했었습니다. PI 교수님께서도 제가 영어가 잘 안되니 이메일로 랩 결과도 보고하고 연락을 드리겠다고 부탁을 드렸으나 1년 가기 전에 본인과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가 늘 것이니 걱정 말고 본인과 편하게 대화로 하자고 하셨지만 1년 지나고 랩 미팅 시간에 넌 이상하게 영어가 안 느는구나 하시며 한탄하시던 생각이 납니다. 영어는 노력여하에 따라 달라지는데 샌디에고에는 한인이 많아 영어 쓸 일이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샌디에고의 장점이자 단점이 한인이 많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살던 곳은 UCSD 근처에 있는 UTC 위치였고 아이들 학교 후문 바로 뒤에 위치해서 아이들 학교도 걸어 다닐 수 있었고 저도 UCSD 셔틀을 이용하여 출퇴근 할 수 있었던 곳입니다. 주차하는 것이 전쟁 같았던 UCSD에 출근하면서 셔틀을 탈 수 있는 곳에 살았던 것은 큰 장점 중의 하나였습니다. UTC는 UCSD 근처라 대학생들 뿐만 아니라 박사 후 과정에 있는 연구원 선생님들이 많이 살고 계신 동네였습니다. 보통 샌디에고에 연수 오신 많은 한국 분들은 학군이 좋은 델마 지역에 계시는데 저는 넓은 집과 차고를 싼 월세에 지낼 수 있는 집을 구하게 되어 UTC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른 한국분들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어 적응하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곧 UTC에 살고 있는 한국 주재원이나 박사 후 과정에 있는 선생님들과 어울리면서 적응을 하였고 UCSD biomedical science 연구동에 같이 연수를 오게 된 전북대 진흥용 선생님과 고대구로병원 류혜진 선생님을 만나서 더더욱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나이면서 같은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는 세명이 같이 있으니 따뜻한 샌디에고가 더 따뜻해졌던 1년이었습니다.

제가 Dillmann 교수님 랩에 지원을 할 때는 Dillmann 교수님이 갑상선기능항진증 쥐 모델로 연구를 했던 논문을 보고 갑상선 연구를 하고 싶다고 했던 상태였습니다. 저는 처음에 당뇨병성 신증에 대한 쥐실험을 하다 본원 전임교원 발령 받을 때 갑상선 쪽으로 전공을 바꾼 상태라 갑상선 연구에 도움을 받고자 지원을 했는데 교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연구주제에 대해 flexible한 mind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갑상선기능항진증 쥐모델을 가지고는 있는데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게 되면 1년내에 데이터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본인 랩에 준비되어 있는 제1형 당뇨병 쥐 모델의 심장을 가지고 연구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추천을 하셨습니다. 짧게 연구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하는 저를 위해 한 배려였습니다. 당뇨병 쥐에 대해서는 연구를 해 봤지만 심장에 대해서는 연구를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더 흥미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의 선임 연구원인 독인 출신 타냐 선생님한테서 조직을 받아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했던 실험은 당뇨병성 심장병증이 있는 쥐 심장에서 PDH가 인산화되어 불활성화가 되고 PPDH/PDH 가 증가하는데 심장 근육의 수축에 중요한 mitochondrial calcium uniporter(MCU)를 과발현 시키면 증가된 PPDH/PDH가 감소되어 대사작용에 좋은 효과가 있다는 연구였습니다. 아직까지 당뇨병성 심장병증과 MCU에 관한 연구를 거의 찾기 힘든데 이러한 결과도 처음 도출한 연구였습니다. 제가 1년간 시행했던 연구는 여기까지였고 이후에는 다른 연구원 선생님들이 데이터를 추가하여 정리할 것 같습니다.

1년간의 미국 연수동안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던 일을 꼽으라면 무엇보다도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남편도 같이 갔으면 좋았겠지만 사정상 무리였기 때문에 친정 어머니가 1년간 고생을 많이 해 주셨고 혼자 아이들을 돌보는 것보다는 훨씬 덜 힘들기도 했습니다. 랩실에 출근하는 것도 일이라고 생각하면 일이었지만 한국에서 정신없이 지냈던 것에 비하면 휴가와 같은 느낌이었고 등하교를 엄마가 직접 해주니 아이들도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엄마와의 기억 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1년간 연수를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본원 내분비내과 다른 교수님들이 수고를 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내분비내과 선생님들께 감사드리고 샌디에고에서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 Dillmann 교수님과 Dr. Brian 이하 제가 있던 랩실 식구들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