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신피질 호르몬: 스테로이드의 역사 (2)

김주영 (동수원병원 내분비내과)

불과 얼마전의 일이다. 늘상 대하는 환자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정이 가서 한마디라도 더 하고 싶은 환자들이 있다. 거의 필자가 현재의 직장에 취직하면서부터 4~5년을 지켜보았던 80대 할아버지 환자로 늘 할머니와 같이 오셔서 당뇨 관련 상담을 받고, 할머니는 ‘이 양반 간식 좀 못먹게 해주세요. ‘ 라고 타박아닌 타박을 하고, 할아버지는 그 사람좋은 미소를 띄우며 ‘이사람이 내가 언제 그랬다고, 선생님 앞에서 없는 이야기도 지어내내. ’ 하며 늘 기분좋은 실랑이를 하시던 분들이다. 하지만 얼마전부터 이 환자에게 변화가 감지되었다. 혈당 기록 수첩을 보니 혈당이 많이 올라있는 상태라 간식 많이 드셨냐고 물었더니, 본인은 절대안그랬다고 하고, 할머니는 귀가 어두우신 할아버지 몰래 내게 속삭인다. ‘혈당이 너무 높다며 밤새 환자가 계속 사탕을 먹었어요. 혈당이 높은데 사탕 먹으면 안된다고 말려도 소용없어요. ’ 그러다가 급기야 그 순한 양같던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무섭게 노려보며 ‘사탕 안먹었어! ‘하고 버럭 소리를 질러댄다. 할머니는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체념한 표정이다.

오랜기간 보던 환자들의 변화를 보는 건 참 가슴 먹먹한 일이다. 할머니께 아무래도 ‘인지기능에장애가 생긴 것 같다’ 라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설명을 하며 신경과 진료를 요청드렸고, 얼마전 치매판정을 받으시고, 후에 자녀들이 와서 알려주기를 요양병원으로 모셨다고 한다.늘 이렇게 환자들과도 만남과 헤어짐도 있듯, 이제 Medical History 로 진행하던 이 연재도 스테로이드의 역사, 그 두번째 이야기로 끝으로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앞서 이야기에서처럼 1935년에 이르러 미국의 Edward Calvin Kendall(1886-1972), 스위스의 Tadeus Reichstein(1897-1996)에 의해 부신피질 추출액에서 dehydrocortisone (compound E) 을 발견하였지만 당시만해도 정확한 작용은 알지못한 채 동물실험에서의 Addison’s disease에 어느 정도의 생리적인 효과를 나타낸다는 정도였으나 생산 가능한 양이 너무 적고 고가여서 임상적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Cortisone의 최초의 상업적인 생산은 1949년 Merck & Co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지나치게 고가인 이 물질을 널리 상업화 시키기에는 임상적 효과에 대한 근거가 빈약하여 Merck 회사로서도 고민인 나날들이었다.

이런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실험실 안의 dehydrocortisone (compound E) 를 임상의 무대로 끌고나간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Philip Showalter Hench (1896-1965)로 카리스마 넘치는 열정적인 성격이었으나, 심각한 구개열로 인해 그의 발음은 매우 이해 하기 힘들었다 한다. 아마도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처음에는 환자들과의 의사소통이 비교적 덜 중요한 분야인 병리학을 택하였지만, 1922년 운명의 이끌림으로 임상가로 전향하였고 1928년 Mayo Clinic의 류마티스과의 수장이 되었다.하지만 초기의 류마티스 관절염에 대한 이해는 정확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급성 관절질환은 감염성으로 생각되어졌었다!) Mayo Clinic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가 류마티스 분과로 여겨졌었던초라한 시작이었다. 1929년 어느날 65세 의사의 관절염이 황달에 걸리자 이후 관절염이 한참동안관해를 유지하는 경우를 보게 되었고, 이후 비슷한 수차례의 증례를 만나면서 황달 이외에도 임신, 감염성 질환, 수술후 상태 등에 의해 일시적으로 관절염이 관해 되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후 그는 내인성 물질인 ‘Substance X’가 이러한 관해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가정하고 이 물질을 찾기 위해 사람 혹은 소의 담즙산염을 주입하기도 하고 황달환자의 혈액을 수혈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였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수술 후의 신체 상태가 부신의 반응을 일으키며, Addison’s disease의 피로감이 류마티스 관절염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Hench는 Substance X의 출처로서 부신을 고려하게 되고, 부신추출물을 연구하던 Mayo Clinic의 생화학 교수였던 Edward Kendall과 협업하게 된다. 이들은 Merck 회사로부터 5g의 dehydrocortisone 를 제공받아 Mayo clinic의 실험실에서 정제한 후 주사제로 만들어 역사적 임상실험을 시행하게 된다. 1948년 5년간 기존의 그 어떤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에 반응하지 않는 심각한 관절염으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던 29세의 여성에게 처음으로 주사되었고, 이후 그 환자는 걸어서 퇴원하였으며 이후 15명의 다른 환자에게서도 동일하게 좋은 결과를 확인하였다. 1949년 4월 Hench가 이 극적인 치료 전과 후의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자 기립박수가 이어졌으며 이후 1950년 부신피질 호르몬의 구조 및 생물학적인 효과에 대한 발견으로 Hench 와 Kendall 및 Reichstein은 노벨상을 공동 수상하게 된다. 이 열정적인 Hench 라는 의사에 의해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던, 부신피질 호르몬이 치료제로서 사용 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임상의로서의 자세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치료 및 진단에 관한 다양한 영역의 통합이 매우 중요함을 배우게 해준다. 하지만 말년의 그는 이전에 그의 발견에 대해 취했던 열린 자세를 잃어버리고, dehydrocortisone 이 류마티스 관절염의 궁극적인 치료제가 아니며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으며, 그 부작용이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환자의 요구량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여 생긴 결과라고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이후 그는 교우하던 많은 동료들을 잃고, 심각한 스트레스와 당뇨병을 얻게 되어 69세 Jamaica로의 여행 중 폐렴으로 사망하였는데 그 빛나는 명성과 열정에 걸맞지 않는 쓸쓸한 죽음이었다.

그의 열정에 탄복하며 50-60여년전 비교적 근세의 그의 발자취를 되짚어가던 필자도 그 쓸쓸한죽음이 오늘 나온 조간신문의 한 면에서 본 것처럼 안타깝게 느껴졌는데, 아직까지는 열심히 노력하면 그 노력에 걸맞는 보상을 받고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 ‘ 식의 유치한 결말을가장 좋아하는 필자이기 때문인 듯하다.이로써 스테로이드의 역사, 그 두번째 이야기를 끝으로 Medical History 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Left) Philip Showalter Hench, (Right) Hench’s team at the Mayo Clinic